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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컬럼/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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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염쟁이 유씨 를 보고

 


 







  연극 “ 염 쟁이 유씨”를 보고


  이렇게도 고상한 문화생활을  해본지가 몇 년 만인가 모르겠다. 하루 종일 환자 엉덩이에 코를 박고 O 구멍을 닦아 준지도 어언 15년,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O구멍을  닦았 길래, 연애 시절에 그렇게 자주 갔던 대학로를 한 번도 오지 않았었는지 모르겠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대학로는 과연 많이 변해 있었다. 수많은 연극공연장과 음식점, 술집들과 젊은이들로 붐비는 활기찬 곳 이었다.“민들레 영토”는 무엇이며 그래도 눈에 익은 것은 “마로니에 공원”이었다. 막이 올라가기 전 관객석에서 본 소품들의 분위기는 조금 으스스하고 무섭기도 하면서 별로 보고 싶지 않은 허름한 시골 장의사의 실내 풍경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은 결코 피할 수 없이 언젠가는  누구라도 겪어야만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생각 속에서  조차 떠올리고 싶지 않은 화두가 아닐까? 그런데도 이 연극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재미있게 해학적으로 풀어 가면서 관객들에게 눈물 나게 웃기는 것이었다.


  한 노인이 죽은 뒤에 염라대왕 앞으로 끌려갔다. 저승으로   데려간다는 사실을 왜 미리 전갈해 주지 않았느냐고  원망을 늘어놓는 노인의 불평에 염라대왕은 이렇게 대꾸했다. “나는 소식을 전했다. 네 눈이 점차 어두워 진 것이 첫 번째 소식이요, 네 귀가 차츰 먹어 간 것이 두 번째 소식이며, 네 이가 하나 둘 빠진 것이 세 번째 소식이다. 게다가 네 사지가 하루하루 노쇠해졌으니 소식을 얼마나 많이 전한 것이냐!“ 그때 함께 끌려간 소년 하나가 몹시 억울하다는 듯이 염라대왕을 향해 원망을 토로했다. “저는 눈도 밝고 귀도 잘 들리고 이도 튼튼하여 몸이 건강합니다. 어째서 제게는 소식을 미리 전해주지 않았습니까?“ 염라대왕은 또 이렇게 대꾸 했다. "그러냐? 자네에게도 소식을 전했으나 자네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야. 동쪽 이웃의 열다섯 먹은 자가 죽고, 서쪽 이웃의 열아홉 먹은 자가 죽지 않았더냐?  더구나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와 어린애, 젖먹이도 죽은 일이 없더냐?  그것이 바로 네게 전한 소식이다.


  인생을 즐겁게 살기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적어 놓은 최락편(最樂編) 이란 책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조금은 꺼림칙한 기분으로 드디어 연극은 시작되었다. 누군가 마당극 같은 연극을 볼 때는 맨 앞에 앉아서 보는 것이 좋다고 하여 맨 앞줄에 예약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속에 마음에 부담이 왔다. 배우는 관객을 연극 속에 끌어들여 참여시키기 위해 이것저것 시키는 것이었다. 시키는 대로 고추장 찍은 멸치를 안주삼아  소주 두잔 을 연거푸  목구멍 속에 털어 넣었다. 취기가 올라오면서 객석에 구경꾼으로만 앉아있던 나는 어느새 진짜 관객이 되어 연극판에 몰입해 들어가고 있었다. "그래, 인생이 별거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아닌가?“ 점점 취기가 올라왔다. “외과의사가 뭐 별거냐? 튀어나온  살 잘라서 꿰매주고, 터진 곳 막아주고 막힌 곳 뚫어주고 ...”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염쟁이 유씨가 염습을 하면서 말하는 대사가 나의 가슴에 화살처럼 꽂혀들어 오는 것이었다.


  “죽어 석잔 술이 살아 한잔 술만 못한다구들 허구, 어떤 이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들 허는데, 사실 죽음이 있으니께 사는 게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지는 게여. 하루를 부지런히 살면 그날 잠자리가 편하지? 살고 죽는 것도 마찬가지여"


  "죽는 것도 사는 것처럼 계획과 목표가 있어야 헌다는 겨. 한사람의 음식 솜씨는 상차림에서 보여지지만, 그 사람의 됨됨이는 설거지에서 나타나는 벱이거든.  뒷모습이 깔끔해야 지켜보는 사람한테 뭐라두 하나 남겨지는게 있는 게여.”


  “공들여 쌓은 탑도 언젠가는 무너지지만, 끝까지 허물어지지 않는  건 그 탑을 쌓으면서 바친 정성이여.  산다는 건 누구에겐가 정성을 쏟는게지. 죽는 사람 때문에  우는 것도 중요허지만, 산사람들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 더 소중한게여. 삶이 차곡차곡 쌓여서 죽음이 되는 것처럼  모든 변화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보태져서 이루어지는 벱이여. 죽는거 무서워들 말어, 잘 사는 게 더 어렵고 힘들어."


  죽음이후에 남겨지는 것이 재산이나 몸뚱이가 아니라 산 사람과 맺었던 관계, 그들의 기억 속에 남겨진 자신의 무늬임을 떠올린다면 우리가 살아야 하는 방법은 한층 명쾌해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이 끝난 후 공연장을 나오면서 아내가 내손을 잡으며 ”재미있었어?“ 하고 묻는다. ”응” 하고 대답을 짧게 한 후 오랜만에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디선가 따뜻한 봄바람이 상쾌하게 불어오면서, 라일락향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갑자기 그리운 친구들이 보고 싶었고, 내일은 환자 O 구멍을 한번이라도 더 잘 닦아주고 싶었다.


  공든 탑은  무너져도 탑을 쌓을 때의 그 정성만큼은  남아있을 테니까.







  • 작성일
  •   :  2008-04-02
  • 보   도
  •   :  대장항문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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